2018년 개봉한 영화 는 국내 누적 관객 수 150만 명을 돌파하며 '무자극 힐링 영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한국에 정착시킨 작품입니다. 제가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솔직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왜 이렇게 눈을 뗄 수 없는지 스스로도 의아했습니다.도망이 아니라 쉬어가는 것 — 영화의 배경과 이야기임용고시에 낙방하고, 남자친구는 합격하고, 끼니는 편의점 삼각김밥으로 때우던 혜원(김태리)이 어느 겨울날 훌쩍 고향으로 내려옵니다. 거창한 결심 같은 건 없었습니다. 재하(류준열)가 "왜 내려왔어?"라고 묻자, 혜원이 던진 대답은 딱 한마디였죠. "배고파서."제가 이 장면에서 실제로 웃음이 났습니다. 거창한 이유 없이 그냥 지쳐서, 그냥 배고파서 돌아온다는 게 얼마나 솔직하고 인간적인 대사인지 직접 겪어..
솔직히 저는 처음에 이 영화를 그냥 '추억 팔이 상업 영화'쯤으로 가볍게 봤습니다. 745만 관객이라는 숫자를 보고도 반신반의했는데, 막상 보고 나서는 꽤 오랫동안 넋을 놓고 앉아 있었습니다. 찬란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감정이 이렇게 보편적인 것이었나 싶어서요.1980년대 한국이라는 시대적 배경, 이게 핵심입니다영화 써니(2011)가 단순한 청춘물과 다른 이유는 1986년이라는 시대적 맥락을 단순한 소품으로 쓰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전두환 정권 말기, 민주화 운동의 열기가 거리를 뒤덮던 그 시절을 배경으로 설정했지만, 강형철 감독은 여기서 정치적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습니다. 대신 최루탄 가스가 피어오르는 거리에서 여고생들이 라이벌 서클과 패싸움을 벌이는 장면을 나란히 배치하는 방식으로 블랙코미디(..
한국 재난 영화라고 하면 으레 중반부 즈음에 눈물샘을 자극하는 장면이 나오고, 주요 인물 한둘이 희생되는 공식이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그 공식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극장에서 재난 영화를 고를 때마다 괜히 마음의 준비부터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2019년 개봉한 는 처음부터 그 공식을 완전히 무시하더군요. 보고 나서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기분 좋게 극장을 나왔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합니다.SOS 신호와 귀에 박히는 음악, 직접 들어보니일반적으로 재난 영화의 OST는 웅장하고 묵직한 오케스트라 사운드로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는 그 공식을 상당 부분 벗어납니다. 제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이건 예상 밖이다" 싶었던 순간이 바로..
솔직히 저는 처음에 이 영화가 그냥 귀여운 동물들이 나오는 아이들용 애니메이션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극장에서 앉아 있다가 어느 순간 "이거 아이들 영화 맞나?" 싶을 만큼 묵직한 메시지에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거든요. 그 당혹감이 좋았습니다.주토피아라는 세계, 생각보다 훨씬 치밀합니다주토피아(Zootopia)는 단순히 동물들이 사람처럼 사는 세상이 아닙니다. 사하라 스퀘어, 툰드라 타운, 레인포레스트 구역, 리틀 로덴시아 같은 자치구가 기후와 신체 크기에 맞게 설계되어 있고, 동물마다 전용 개찰구가 따로 있을 만큼 디테일이 정교합니다. 저는 이 세계관 설계 자체가 영화의 절반 이상을 이미 완성했다고 봅니다.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제55작 장편 애니메이션인 이 작품은 월드빌딩(World-bui..
슬픔을 느끼면 안 된다고 생각하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솔직히 그랬습니다. '기쁜 감정만 골라서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겁니다. 그런데 은 그 전제 자체가 틀렸다고, 단 102분 만에 조용히 증명해 버립니다. 2015년 개봉 이후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 관객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픽사의 역작을 제가 직접 보고 나서 느낀 것들을 풀어보겠습니다.감정 의인화,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었을까이 영화가 단순한 어린이 애니메이션으로 소비되지 않는 이유는 감정의 의인화 방식 자체에 있습니다. 픽사는 기획 단계부터 심리학자 폴 에크만(Paul Ekman) 박사의 기본 감정 이론을 참고했습니다. 에크만 박사의 이론이란 인간의 감정이 기쁨, 슬픔,..
솔직히 고백하면,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사후 세계를 다룬 애니메이션'이라는 말에 살짝 거리를 뒀습니다. 죽음이라는 소재가 아이들 영화에 어울리나 싶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보고 나서는 제 편견이 얼마나 쓸모없는 것이었는지 바로 알았습니다. 극장을 나오면서도 'Remember Me' 멜로디가 귓가에서 떠나질 않았고, 그날 밤 한참을 멍하게 천장을 바라봤습니다.음악이 금지된 가문, 그리고 망자의 날이라는 무대혹시 가족 중 누군가의 꿈을 응원하지 못했던 적이 있으신가요? 아니면 반대로, 하고 싶은 걸 가족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순간을요. 코코는 바로 그 질문에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주인공 미구엘은 멕시코의 작은 마을 산타 세실리아에 사는 열두 살 소년입니다. 가문의 금기인 음악을 몰래 익히며 다락방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