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편집상과 음향편집상을 동시에 가져간 영화가 있습니다. 처음 이 사실을 확인했을 때, 저는 단순한 레이싱 영화가 기술 부문 최고상을 두 개나 석권했다는 점이 꽤 의아했습니다. 직접 보고 나서야 그 이유를 납득할 수 있었고, 그 납득의 과정이 상당히 강렬했습니다.아날로그 액션이 만들어낸 시각적 서스펜스CG 없이 실제 레이싱 차량과 카메라 워킹만으로 시속 300km의 속도감을 스크린에 구현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제가 직접 봐서야 실감했습니다. 제임스 맨골드 감독은 로우 앵글(low-angle shot) 카메라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는데, 로우 앵글이란 피사체를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촬영 기법으로 차체가 노면을 박차는 물리적 역동감을 극대화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화면이 지면과 거의 ..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요즘 자극적인 콘텐츠에 지쳐 가볍게 틀었던 영화인데, 끝나고 나서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2014년 개봉 당시 1,426만 명이라는 관객수를 기록한 영화 국제시장, 저도 처음엔 '또 신파 아닌가' 싶었는데 막상 보고 나니 그 말을 거두고 싶어 졌습니다.흥남철수부터 이산가족까지, 역사가 한 사람의 인생 안으로제가 직접 보면서 가장 놀랐던 건 영화가 단순히 역사적 사건들을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흥남철수(興南撤收)란 1950년 12월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의 남하를 피해 약 10만 명의 피난민이 미군 수송선을 타고 흥남항에서 철수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영화는 이 장면을 배경 설명으로 처리하는 대신, 주인공 덕수가 어린 여동생 막순이를 잃는 순간으로 ..
친구들과 저녁 자리에서 누군가 "우리 오늘 폰을 식탁에 올려두고 다 같이 확인하자"라고 제안했을 때, 저는 속으로 뜨끔했습니다. 아무 비밀도 없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 순간 본능적으로 주머니 속 휴대폰이 무거워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영화 완벽한 타인은 바로 그 찰나의 감각을 두 시간 내내 스크린 위에서 정교하게 해부해 낸 작품입니다.한국형 리메이크가 성공한 이유, 로컬라이징의 힘완벽한 타인은 2016년 이탈리아에서 제작된 Perfetti Sconosciuti를 원작으로 합니다. 원작은 전 세계 21개국에서 리메이크될 만큼 보편적인 서사를 담고 있는데, 이재규 감독의 한국판이 그 가운데 가장 흥행한 버전 중 하나로 꼽힙니다. 2018년 개봉 후 최종 누적 관객수 529만 명을 기록했으니, 상업영화로..
꿈을 이루면 삶이 마법처럼 바뀔 거라고 믿었던 적이 있으신가요? 저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픽사의 이 그 믿음을 정면으로 흔들었을 때, 솔직히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피트 닥터 감독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지 않았고, 영화가 끝난 뒤에도 그 물음이 머릿속을 쉽게 떠나지 않았습니다.재즈라는 메타포가 전하는 즉흥 연주의 철학일반적으로 픽사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을 위한 영화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만큼은 오히려 어른에게 더 깊이 박히는 작품입니다.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재즈(Jazz)라는 장르 자체가 이미 핵심 메시지를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재즈의 가장 큰 특징은 즉흥 연주(Improvisation)입니다. 즉흥 연주란 악보에 적힌 음표를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연주자가 그 순간의 감정과 분위기에 따라 ..
귀신 영화를 보고 나서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진 적 있으신가요? 저는 파묘를 보고 나서 딱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극장 문을 나서면서 뭔가 묵직한 것이 가슴에서 빠져나간 것 같은, 이상한 해방감이 밀려왔거든요. 2024년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신드롬을 일으킨 파묘, 직접 겪어보니 그 인기가 절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음산한 분위기를 만든 것들영화관 의자에 앉는 순간부터 뭔가 달랐습니다. 본편이 시작되기도 전에 북소리와 징 소리가 귀를 먹먹하게 채우더니, 법사 봉길이 나직하게 읊조리는 태을보신경(太乙保身經) 경문이 스크린을 타고 흘러나왔습니다. 여기서 태을보신경이란 도교 계열의 전통 주문으로, 몸을 보호하고 잡귀를 물리치는 내용을 담은 경전입니다. 그 멜로디가 어찌나 중독성 있던지, 영화가 끝나고도 며칠간 제도..
요즘 콘텐츠에 지쳐 있다면, 2013년에 나온 영화 한 편이 그 해답이 될 수 있습니다. 존 카니 감독의 은 뉴욕 거리를 통째로 녹음 스튜디오로 바꿔버린 음악 영화입니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이렇게 조용하고 담백한 방식으로 사람 마음을 뒤흔들 수 있다는 게.도파민 과부하 시대, 이 영화가 가진 힘요즘 콘텐츠 환경에서 지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OTT(Over-The-Top) 플랫폼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자극적인 소재와 빠른 편집이 표준이 되어버렸고, 관객은 점점 더 강한 자극 없이는 집중하기 어려운 상태에 놓였습니다. 여기서 OTT란 인터넷을 통해 방송이나 영상 콘텐츠를 제공하는 스트리밍 서비스 전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넷플릭스, 웨이브, 티빙 같은 플랫폼들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