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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이라고 불린 마녀가 사실은 가장 용감한 사람이었다면, 우리가 알던 오즈 이야기는 처음부터 거짓말이었던 걸까요. 저는 이 질문을 붙들고 영화관 좌석에 앉았고, 두 시간 반이 지나도록 거기서 한 발짝도 못 떠났습니다. 브로드웨이 역대 최고 흥행 뮤지컬을 스크린으로 옮긴 <위키드>는 그 질문에 생각보다 훨씬 묵직한 방식으로 답하는 작품이었습니다.
오즈 세계관을 뒤집는 전복적 설정의 힘
<위키드>의 출발점은 고전 《오즈의 마법사》를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해체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악당으로 알아온 초록색 마녀는 사실 엘파바(신시아 에리보 분)라는 이름을 가진 한 소녀였고, 그녀가 마녀로 불리게 된 배경에는 권력을 유지하려는 마법사(제프 골드블룸 분)의 치밀한 프로파간다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프로파간다(Propaganda)란 특정 집단이 대중의 인식을 의도적으로 조작해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을 만드는 정치적 선동 행위를 뜻합니다. 영화 속 마법사는 말하는 동물(Animal)들을 탄압하면서 그 책임을 엘파바에게 돌리는 방식으로 이 기술을 완벽하게 구사합니다. 저는 이 장면들을 보면서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뮤지컬 판타지라길래 가볍게 즐기러 갔는데, 화면 안에서 전개되는 서사가 꽤 날카로운 사회 비판을 담고 있었거든요.
<위키드>가 그레고리 맥과이어의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도 이 세계관의 깊이를 설명해 줍니다. 원작은 1995년 출간 당시부터 타자화(Othering)의 구조, 즉 주류 집단이 소수자를 '우리'와 다른 존재로 규정해 배제하는 메커니즘을 핵심 주제로 삼았습니다. 영화는 그 철학적 뿌리를 글린다(아리아나 그란데 분)와 엘파바의 우정 서사 안에 자연스럽게 녹여냈고, 쉬즈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두 사람이 서로의 결핍을 채워가는 과정이 그 설정을 감정적으로 완성시킵니다.
다만 이 오즈 세계관의 확장이 어떤 분들에게는 "원작을 너무 잘 알아야만 즐길 수 있다"는 진입 장벽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의견도 이해는 됩니다. 저는 원작 뮤지컬을 사전에 공부하지 않고 갔는데도 충분히 몰입했지만, 함께 간 일행 중에는 캐릭터 관계를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는 분도 있었으니까요.
- 엘파바: 초록색 피부로 평생 차별받으며 성장한 천재 마법사. 시스템의 모순을 직시하고 고독한 정의를 선택하는 인물
- 글린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금발의 소녀. 우정과 명성 사이에서 갈등하며 점차 자신의 진심을 마주하는 인물
- 마법사: 권력 유지를 위해 약자를 희생양으로 삼는 위선적인 통치자. 오즈의 시스템 부조리를 대표하는 인물
실물 세트 미장센과 라이브 보컬이 만든 감각의 밀도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이건 좀 다르다"고 느낀 지점은 화면의 질감이었습니다. 요즘 대형 판타지 영화들이 CG에 과도하게 의존하면서 배경이 마치 게임 렌더링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위키드>는 그 반대 방향을 선택했습니다. 미술감독 네이선 크롤리(Nathan Crowley)는 수백만 송이의 실제 튤립을 심어 먼치킨랜드를 조성하고, 쉬즈 대학과 에메랄드 시티의 거대한 기차역을 물리적 세트로 직접 빌드업했습니다.
여기서 미장센(Mise-en-scène)이란 프랑스어에서 온 영화·연극 용어로, 카메라 앵글·조명·세트·의상·배우의 위치까지 화면 안에 배치되는 모든 시각 요소를 종합적으로 설계하는 연출 개념을 말합니다. <위키드>의 미장센이 특별한 이유는 그 모든 요소가 실물로 구현되었다는 데 있습니다. 빛을 받는 에메랄드빛 건축물과 노란 벽돌 길의 질감이 CG와 확연히 달랐고, 덕분에 화면이 살아 숨 쉬는 느낌을 줬습니다.
여기에 라이브 보컬 레코딩(Live Vocal Recording) 방식이 더해지면서 몰입도는 한 차원 높아집니다. 라이브 보컬 레코딩이란 배우가 사전에 녹음된 음악에 맞춰 입만 움직이는 립싱크 방식이 아니라, 실제 세트장에서 노래를 부르며 동시에 촬영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덕분에 엘파바가 숨이 차오르는 순간의 미세한 감정적 떨림이 그대로 마이크에 담겼고, 스티븐 슈왈츠(Stephen Schwartz)의 오케스트라 편곡과 맞물리면서 청각적 텐션이 극에 달하는 장면들이 연출됩니다(출처: 씨네21 평론).
특히 'Defying Gravity(중력을 거슬러)' 시퀀스는 제 경험상 이 영화 전체에서 가장 긴 여운을 남기는 장면이었습니다. 엘파바가 빗자루를 타고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그 순간, 보색 대비와 에메랄드빛 조명 제어가 만들어낸 시각적 카타르시스는 극장 좌석에서 저도 모르게 몸을 앞으로 기울게 만들었습니다. 영화관을 나온 후에도 그 멜로디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고, 일주일째 흥얼거리고 있습니다.
사운드 디자인이 남긴 여운, 그리고 구조적 한계
뮤지컬 영화에서 사운드 디자인(Sound Design)이란 단순히 음악을 배경에 까는 것이 아닙니다. 대사와 가창, 효과음과 오케스트라 편곡이 서사의 감정 흐름과 정밀하게 맞물리도록 설계하는 작업 전체를 가리킵니다. <위키드>의 사운드 디자인은 그 정의에 가장 충실한 사례 중 하나로 보입니다. 스티븐 슈왈츠가 브로드웨이 초연부터 쌓아온 오리지널 넘버들이 한층 더 웅장해진 오케스트라 편곡을 입으면서, 마음이 정화되는 듯한 독특한 감각을 전달합니다.
저는 평소 지나치게 자극적인 콘텐츠에 피로를 느끼던 시기에 이 영화를 봤는데, 음악이 그 메마른 감성을 시원하게 씻어내는 역할을 했습니다. 주토피아나 인사이드 아웃 같은 작품들이 그랬던 것처럼, 장르적 문법 안에서 감정을 정직하게 건드리는 서사는 오래 기억에 남더라고요. <위키드>의 OST가 그런 종류의 중독성을 가졌습니다(출처: 멜론 차트 기준 위키드 OST 스트리밍).
다만 비평적으로 솔직하게 보자면, 이 영화가 원작 뮤지컬의 1막 만을 독립적인 대작으로 확장한 구조적 선택은 분명한 부작용을 낳습니다. 쉬즈 대학에서 두 주인공이 관계를 쌓는 과정이 세밀하게 묘사되는 만큼, 중반부 일부 에피소드들이 다음 파트를 위한 징검다리 역할에 그치면서 서사적 탄력이 순간적으로 희석됩니다. 마담 모리블(올리비아 콜맨 분)의 음모나 피에로와의 로맨스 같은 서브플롯이 메인 우정 플롯에 완전히 녹아들지 못하고 부유하는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 점을 두고 "뮤지컬을 원래 좋아하는 분들은 괜찮다고 하던데"라는 의견도 있는데, 저는 뮤지컬 마니아가 아닌 일반 영화 관객 입장에서는 이 중반부의 속도감 저하가 체감된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딩 시퀀스의 밀도와 음악적 완성도가 그 아쉬움을 상쇄하고도 남습니다. 집단주의적 편견 현실을 이 수준의 비주얼 미학과 사운드 디자인으로 구현한 작품은 쉽게 나오지 않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위키드 원작 뮤지컬을 몰라도 영화를 즐길 수 있나요?
A. 저는 원작 뮤지컬을 사전 공부 없이 봤는데도 충분히 몰입했습니다. 다만 오즈의 마법사 기본 설정을 어느 정도 알고 가면 세계관 진입이 훨씬 빠릅니다. 오즈를 전혀 모르는 분들에게는 간단한 배경 설명을 미리 읽고 가시는 걸 권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Q. 위키드는 아이와 함께 보기 좋은 영화인가요?
A. 비주얼 자체는 화려하고 아름다워서 아이들이 좋아할 수 있습니다. 다만 프로파간다, 소수자 차별, 권력의 부조리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어 초등학교 저학년 이하 어린이에게는 내용이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초등 고학년 이상이라면 오히려 함께 보고 이야기 나누기 좋은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
Q. 위키드 2부는 언제 개봉하나요?
A. 이 영화는 원작 뮤지컬의 1막에 해당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2막에 해당하는 후속편 제작이 확정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확한 개봉 일정은 제작사 공식 발표를 확인하시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Q. 신시아 에리보와 아리아나 그란데 중 누가 더 인상적인가요?
A. 이건 보는 분마다 다를 수 있는 질문입니다. 신시아 에리보의 라이브 보컬은 감정의 미세한 떨림까지 살아있어 압도적이라는 평가가 많고, 아리아나 그란데는 글린다 특유의 경쾌함과 내면의 갈등을 섬세하게 표현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신시아 에리보의 'Defying Gravity' 장면에서 더 오래 전율이 남았습니다.
결론
<위키드>는 뮤지컬 영화라는 장르의 가능성을 현재 기술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점까지 밀어붙인 작품입니다. 실물 세트 미장센과 라이브 보컬 레코딩, 그리고 거장의 사운드 디자인이 결합된 'Defying Gravity' 시퀀스 하나만으로도 극장에서 볼 가치는 충분합니다. 중반부 서사의 속도감 저하라는 구조적 아쉬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이 이 작품의 전체적인 완성도를 흔들 수준은 아닙니다.
뮤지컬을 원래 좋아하는 분이라면 당연히 보셔야 하고, 저처럼 뮤지컬에 딱히 특별한 관심이 없던 분들도 한번 도전해 보시길 권합니다. 요즘처럼 자극적인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기에, 감성을 정직하게 건드리는 이런 영화 한 편이 주는 정화력은 생각보다 훨씬 오래갑니다. 후속 편이 나오기 전에 1편을 먼저 챙겨 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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