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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분짜리 영화 한 편이 극장을 나온 뒤에도 며칠씩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게 언제였는지 기억하시나요? 저는 <듄: 파트2>를 보고 나서 한동안 한스 짐머의 메인 테마를 무의식적으로 흥얼거리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전 세계 박스오피스를 휩쓸며 시대의 SF 걸작으로 자리매김한 이 작품, 과연 무엇이 그토록 오래 남는 걸까요.
시각미학: 오렌지빛 사막과 흑백 격투장이 만든 충돌
솔직히 첫 장면부터 예상 밖이었습니다. 요르단과 아랍에미리트의 실제 사막에서 촬영된 아라키스의 풍경은 CG로 만든 세계와는 질감 자체가 달랐습니다. 그레이그 프레이저 촬영감독이 구사한 미장센(Mise-en-scène)이란 카메라 프레임 안에 배치되는 모든 시각 요소, 즉 조명, 배우의 위치, 배경까지 포함한 화면 구성 전략을 의미합니다. 그가 IMAX 인증 카메라로 포착한 사막의 자연광은 오렌지빛과 황금빛 사이를 넘나들며 인물들의 생존 감각을 피부로 전달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건 하코넨 가문의 모행성 기에디 프라임에서 펼쳐지는 적외선 촬영 시퀀스였습니다. 적외선 촬영(Infrared Cinematography)이란 가시광선 대신 적외선 파장을 포착해 피부, 식물, 하늘 등을 비정상적으로 밝거나 어둡게 왜곡하는 촬영 기법입니다. 이 기법 덕분에 기에디 프라임의 검투장은 그냥 흑백이 아니라 생명체가 없는 행성처럼 보이는 기괴한 무채색으로 물들었고, 페이드 로타(오스틴 버틀러 분)의 잔혹함이 그 비주얼 안에서 배가됐습니다.
두 행성의 색온도 대비는 단순한 미적 선택이 아닙니다. 따뜻한 색감의 아라키스는 프레멘의 생명력과 저항 의지를, 냉혹한 무채색의 기에디 프라임은 하코넨의 폭력성과 공허함을 시각적으로 코드화한 연출 전략입니다. 제가 직접 스크린으로 마주했을 때, 이 대비가 얼마나 즉각적으로 감각에 박히는지 느꼈습니다.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어느 쪽이 악이고 어느 쪽이 저항인지 눈이 먼저 알아버리는 경험이었습니다.
<듄: 파트2>의 시각적 완성도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매체에서 데이비드 린의 <아라비아의 로렌스>에 비견된다는 평가가 나온 바 있습니다(출처: Rotten Tomatoes 평론 종합). 저도 그 평가에 동의하는 편이지만, 단순히 스케일이 크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연광과 물리적 공간을 통해 감정의 온도를 설계했다는 점에서 그 비교가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메시아주의: 영웅 서사의 껍데기를 벗기다
혹시 이 영화를 "폴이 주인공이고 악당을 무찌르는 이야기"로 정리하셨나요? 그렇다면 드니 빌뇌브 감독이 설계한 서사의 핵심을 반쯤 놓친 겁니다. <듄: 파트2>의 가장 날카로운 지점은 영웅 서사(Hero's Journey)를 충실히 따르는 척하면서 그 공식 자체를 해체한다는 데 있습니다.
메시아주의(Messianism)란 특정 인물이 신의 선택을 받은 구원자라는 종교적 믿음이 집단 전체를 지배하는 사회 현상을 가리킵니다. 영화 속 프레멘의 지도자 스틸가(하비에르 바르뎀 분)는 이 메시아주의에 완전히 포획된 인물입니다. 폴 아트레이데스가 어떤 행동을 해도 "예언의 성취"로 해석하고, 심지어 폴 스스로 자신이 그 예언의 도구가 되어 가는 것에 불안을 느낄 때도 스틸가는 환호 합니다. 이 장면들이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감독이 의도한 효과입니다.
반면 챠니(젠데이아 분)는 끝까지 이 예언 시스템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제 경험상 이 캐릭터가 처음엔 단순한 로맨스 상대로 읽힐 수 있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챠니야말로 이 서사 전체에서 유일하게 맑은 눈으로 현실을 보는 인물임을 알게 됩니다. 베네 게세리트(Bene Gesserit)란 수천 년에 걸쳐 유전자와 종교를 조작해 우주의 권력 구조를 설계해온 여성 정치 집단을 말하는데, 레이디 제시카(레베카 퍼거슨 분)가 이 집단의 계획을 충실히 이행하며 아들 폴을 구원자로 포장하는 과정이 영화 안에서 꽤 명시적으로 드러납니다.
이 구도가 현대 사회에서 낯설지 않다고 느끼신다면, 그건 우연이 아닙니다. 프랭크 허버트가 원작 소설을 집필하던 1960년대부터 이미 이 메시아주의 비판은 핵심 주제였고, 빌뇌브는 그것을 2020년대의 감각으로 번역했습니다. <듄: 파트2>가 단순한 스페이스 오페라(Space Opera), 즉 우주를 배경으로 한 대규모 서사 장르 영화에 머물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다만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후반부로 갈수록 이 비판적 시선이 다소 서두르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황제 알현실에서의 최종 결전이 아날로그 결투 공식으로 다소 단순하게 마무리되는 부분은 전반부의 촘촘한 서사와 비교했을 때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베네 게세리트의 계략이나 대가문들의 정치적 역학 관계를 더 깊이 풀어냈더라면 이 주제 의식이 클라이맥스까지 온전히 이어졌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듄: 파트2>의 서사 구조에 대한 연구는 여러 영화학 관련 매체에서도 다루어진 바 있습니다(출처: The Criterion Collection). 메시아 서사를 해체하는 방식이 얼마나 의식적으로 설계된 것인지, 원작 소설과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접근입니다.
아래는 <듄: 파트2>가 메시아주의 비판을 구현하는 핵심 장치들입니다.
- 스틸가의 맹목적 믿음: 폴의 모든 행동을 예언으로 해석하는 집단 광기의 표본
- 레이디 제시카의 종교적 설계: 베네 게세리트의 계획에 따라 아들을 구원자로 만드는 어머니
- 챠니의 저항: 예언 시스템에 동의하지 않는 유일한 주체적 목소리
- 폴의 내면 갈등: 영웅이 되는 것이 우주적 재앙의 시작임을 알면서도 나아가는 비극적 선택
OST: 음악이 영화의 감각을 어떻게 연장하는가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온 뒤에도 귀에서 사라지지 않는 음악이 있다는 건, 그 사운드트랙이 단순한 배경음을 넘어섰다는 뜻입니다. 한스 짐머가 완성한 <듄: 파트2>의 OST는 제가 개인적으로 최근 몇 년 사이 들은 영화 음악 중 가장 이물감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좋은 의미에서요.
오케스트레이션(Orchestration)이란 다양한 악기를 조합해 하나의 음악적 색채를 만들어내는 편곡 기법입니다. 짐머는 전통적인 오케스트레이션에 이국적인 보컬 선율과 전자음을 레이어링 했습니다. 레이어링(Layering)이란 여러 음향 요소를 겹겹이 쌓아 하나의 두터운 질감을 만드는 사운드 디자인 방식으로, 짐머의 이 접근 덕분에 아라키스의 사막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공간처럼 들렸습니다.
특히 타악기의 폭발적인 리듬이 모래벌레(샌드웜) 라이딩 시퀀스와 맞물릴 때의 경험은, 시각과 청각이 동시에 압도되는 감각이었습니다. 요즘 자극적인 콘텐츠에 피로감을 느끼던 참이었는데, 이 장면만큼은 제가 그 자리에 완전히 붙박힌 것처럼 온전히 스크린에 집중하게 만들었습니다. 극장이라는 공간의 존재 이유를 체감한 순간이었습니다.
음악이 서사를 어떻게 지지하는지도 흥미롭습니다. 폴이 내면적으로 흔들리는 장면에서 테마는 완결되지 않고 미완성 화음으로 끊깁니다. 반면 챠니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비교적 맑고 선명한 선율이 배치됩니다. 이 음악적 대조는 두 인물이 가진 서사적 위치를 청각으로 먼저 알려주는 장치입니다. 이런 디테일을 눈치채고 나니 처음엔 그냥 "멋진 음악"으로만 들리던 사운드트랙이 전혀 다르게 들렸습니다.
결국 <듄: 파트2>의 OST는 영화가 끝난 뒤에도 작품의 여운을 물리적으로 연장하는 기능을 합니다. 제가 이 음악을 며칠씩 흥얼거렸던 건 단순히 멜로디가 귀에 박혀서가 아니라, 음악이 불러일으킨 감각이 채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이제는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