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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영화는 무섭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셨나요? 저는 솔직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무더운 주말 오후, 그냥 에어컨 바람이나 쬐러 들어간 극장에서 영화 한 편이 그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습니다. 연상호 감독의 신작 군체는 단순히 무서운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스크린 속 하얗고 끈적한 좀비 떼를 보면서 어느 순간 '저게 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을 때, 저는 음료수 컵을 꼭 쥔 채 자리에 굳어 있었습니다.
집단지성 좀비, 그 설정이 왜 이렇게 소름 돋는가
일반적으로 좀비 영화라고 하면 무작정 달려드는 원초적인 공포를 떠올리게 됩니다. 부산행이 그랬고, 수많은 헐리우드 좀비물이 그 문법을 반복해 왔습니다. 그런데 군체는 그 공식을 정면으로 거부합니다. 이 영화의 좀비들은 처음에는 네 발로 기어 다니는 짐승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의 행동을 관찰하고 모방하면서 두 발로 걸어 다니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핵심 개념이 등장합니다. 바로 군집 지성(Swarm Intelligence)입니다. 군집 지성이란 개별 개체의 능력과는 별개로, 다수가 연결되어 집단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지능처럼 작동하는 현상을 뜻합니다. 영화 속 좀비들은 하얀 점액질 그물망으로 서로의 신체가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한 개체가 파악한 생존자의 위치나 탈출 경로가 무리 전체에 실시간으로 공유됩니다. 이것이 제가 극장 안에서 가장 소름이 돋았던 장면입니다. 징그럽다는 감각을 넘어서, 이 설정이 무언가를 강하게 가리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무언가'는 바로 알고리즘(Algorithm)입니다. 알고리즘이란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정해진 규칙에 따라 정보를 처리하는 일련의 절차를 말하는데, 오늘날 소셜미디어 플랫폼들이 사용자에게 비슷한 콘텐츠만 반복적으로 노출하는 방식이 대표적입니다. 군체의 좀비들이 점액질 네트워크로 서로를 연결해 생각을 공유하듯, 우리도 스마트폰 피드 안에서 알고리즘이 만들어 준 정보의 방 안에 갇혀 비슷한 생각만 소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제 경험상 이 비유가 지나친 해석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너무 직접적이어서 불편할 정도였습니다.
실제로 필터 버블(Filter Bubble) 현상, 즉 알고리즘이 사용자의 성향에 맞는 정보만 반복 노출해 다양한 시각을 차단하는 현상은 이미 여러 미디어 연구에서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어 왔습니다(출처: 한국학술정보 RISS). 군체는 이 사회적 병리 현상을 좀비라는 장르적 외피로 포장해서 보여줍니다. 이래서 이 영화가 단순한 오락물이라고만 볼 수 없다고 생각한 이유입니다.
신파를 덜어낸 자리에 남은 것들
연상호 감독 영화를 보면서 항상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과도한 감정 자극, 이른바 신파(新派)의 문제입니다. 신파란 사실적 개연성보다 관객의 눈물을 유도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설계된 비극적 장치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부산행과 반도는 장르적 완성도는 높았지만, 억지 눈물을 쥐어짜는 설정이 오히려 감동의 밀도를 희석시킨다는 비판을 꾸준히 받아왔습니다. 저도 그 의견에 동의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군체는 달랐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전지현이 연기하는 천재 생명공학자 권세정은 모두가 공포에 질려 앞만 보고 달릴 때 혼자 멈춰 서서 의심하고 다른 경로를 찾아냅니다. 집단적 패닉 속에서 이성적 판단을 유지하는 캐릭터를 억지 감동 없이 보여준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전지현 배우가 그것을 굉장히 안정적으로 구현해 냈습니다. 오랜 공백 이후의 복귀작 치고 부담스럽지 않게 자기 색을 유지한 연기였습니다.
지창욱과 김신록이 보여준 남매의 사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를 이용하는 누나 최현희를 끝까지 등에 업고 계단을 뛰어 오르는 동생 최현석의 장면은, 제가 극장에서 가슴이 가장 찌릿했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감동이 작위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는 이 장면이 눈물을 짜내기 위한 설정이 아니라, 재난 속에서 가장 취약한 위치에 놓인 사람을 끝까지 책임지는 행동 자체를 담담하게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집에 두고 온 가족 생각이 문득 났던 것도 그 진정성 때문이었을 겁니다.
군체가 신파를 줄이면서 대신 채운 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집단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주인공의 이성적 판단력, 즉 주체성의 서사
- 사회적 약자를 방치하지 않는 연대의 감동, 억지 눈물 없는 인간 존엄의 묘사
- 좀비라는 장르 문법을 유지하면서도 집단주의 비판이라는 주제 의식을 동시에 구현
- 쉴 틈 없이 몰아치는 액션 시퀀스로 감정 소모를 줄이고 긴장감으로 대체
이 네 가지가 맞물리면서 군체는 연상호 감독 전작들과는 결이 다른 영화가 됐습니다. 개봉 한 달 만에 누적 관객 570만 명을 넘긴 것은 이 계산된 변화가 관객과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봅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KOBIS 통합전산망).
사회적 은유로서의 군체, 그리고 아쉬운 지점
좋은 장르 영화의 조건 중 하나는 장르적 재미 뒤에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군체는 그 기준을 꽤 잘 충족합니다. 하얀 점액질로 연결되어 단 하나의 의지처럼 움직이는 좀비 떼는, 소셜미디어 에코 챔버(Echo Chamber) 현상을 시각화한 것처럼 읽힙니다. 에코 챔버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모여 서로의 의견을 증폭시키고 다른 시각에는 귀를 닫는 정보 환경을 말합니다. 영화 속 좀비들이 정보를 공유하며 인간을 사냥하는 방식과 오늘날 온라인 여론이 개인을 압박하는 방식이 겹쳐 보이는 건 저만의 과잉 해석이 아닐 것입니다.
극장을 나서면서 이 생각이 더 선명해졌습니다. 밖은 여전히 덥고 습했지만 머릿속은 기묘하게 가벼웠습니다. 서로 다른 옷을 입고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걷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나만의 생각을 가지고 '나'로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평범하고 소중한 일인지 새삼 느꼈습니다. 영화 한 편이 그런 감각을 남겨준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볼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다만 제가 냉정하게 아쉬웠던 부분도 분명히 있습니다. 구교환이 연기한 악역 서영철의 캐릭터는 제가 가장 기대했던 부분이었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총격전과 스펙터클에 밀려 급하게 소비되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생물 테러를 기획한 인물의 내면과 동기가 더 깊이 파고들어 졌다면, 집단주의 비판이라는 주제와 더 단단하게 연결됐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중후반부의 전개가 층마다 미션을 클리어하는 방탈출 게임처럼 흘러간다는 지적도 피하기 어렵습니다. 조연 생존자들이 극적 긴장감을 위해 너무 공식적으로 퇴장하는 구조는 대형 상업 영화의 한계를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인상을 줍니다.
그럼에도 군체는 올여름 극장에서 경험할 가치가 충분한 작품입니다. 완벽한 플롯을 기대하고 가면 실망할 수 있지만, K-좀비 장르가 이 정도까지 사회적 은유를 담아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는 경험으로는 충분합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스마트폰 피드를 내려다보는 시간을 조금 줄였습니다. 끈적한 점액질 그물망이 계속 머릿속에 남아서요. 빌딩 탈출 액션을 즐기러 갔다가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영화, 그것만으로도 군체는 꽤 영리한 선택을 한 겁니다.